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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리고 감사

  

신 흥섭(2009년 사법고시 합격)

 

10여 년 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돈도 작은 명예도 10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 친구도 떠나보냈다.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삶이 너무나 힘들고 한심해서 한강으로 죽으러 간적도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 전화를 받고 나는 대뜸 “너 네 교회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7년 만에 교회에 가게 되었다. 예배를 드리는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 서기 위해서 나에게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 목사님이 선포하는 말씀이 바로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 같은 느낌, 죽었던 나의 영혼이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 난 그 느낌들에 끌려들어갔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몰라 막노동을 하던 내게 하나님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그만두었던 학교에 2학년으로 재입학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이상 이제 내 앞길에 아무런 장애도 없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새벽에 신문배달, 주말에는 막노동을 하며 생활을 했고, 반드시 장학금을 타야 하는 입장이라서 시험에 신경 쓰다 보니 사시공부에 들어서긴 했지만 공부할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어떤 날에는 돈이 다 떨어져서 100원짜리 자판기 율무차로 저녁을 때운 적도 있었다.

2003년 졸업을 하면서 취직을 했다. 미성숙한 신앙인지라 기도 한 마디 안하고 진로결정을 내 임의로 해버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다하지 못했던 공부가 자꾸만 생각났다. 나도 한번쯤 공부에만 전념해보고 싶었다. 이미 33살의 나이인지라 공부의 길로 돌아가면 나에게는 더 이상 돌아 올 곳이 없었다. 되든 안 되든 거기서 끝을 봐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하루는 새벽예배 끝나고(6시40분쯤) 한참을 기도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9시5분이었다. 부리나케 직장으로 뛰어간 적도 있다. 그렇게 약45일 가까운 새벽기도 속에서 확신을 갖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 때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교회에서 많이 생활을 하다 보니 같은 셀 자매 한명이 자꾸만 내 눈에 밟힌다. 이리가도 밟히고 저리가도 밟히고 피하려 해도 계속 밟힌다. ‘설마 저 자매가...에이 아니야’ 하는데도 계속 밟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작정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욱 마음에 확신이 선다. “니 갈비뼈라고...” “이럴 수가...” 그래서 하나님께 증표까지 구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매에게서 걷어차이게 하시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증표까지 보여주신다. Oh! my God!!!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의 아내 김세희 자매와 결혼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과분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혼을 통해 삶이 안정되었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아내가 뒷바라지를 해줘서 부족함이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2004년 9월에 결혼했는데, 1차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신혼여행은 포기하고 바로 공부에 들어갔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다음해에 바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교만해졌던 것일까? 2차시험을 준비하면서 오직 공부에 전념하느라 하나님을 멀리했다. 내가 드리는 예배는 오직 주일예배뿐이었다. 시간을 핑계로 말씀도 읽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간혹 인식하기는 했지만 일단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부에만 집중했다. 이대로만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해 12월부터 매달 몸살이 왔다. 그것도 일주일 이상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살이라 아내가 출근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어깨, 목, 팔은 굳어서 글씨를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하려고 하면 몸살이 또 찾아왔다. 나날이 밀리는 공부 양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내가 결국 5월쯤에는 공부에 손을 놓고 방황을 했다. 시험 보러 가는 것조차 싫었다. 당연히 떨어질 것을 예상했고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떨어질 것을 알았기에 2차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다시 1차 시험 준비를 했다. 토익도 통과하고 진도별 모의고사도 따라가면서 열심히 했다. 그러다 12월에 목과 어깨에 침을 맞던 중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그 때 병원에서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 “힘을 빼라”라는 음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순간 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여러 번 되내기는 했지만 퇴원하고서는 마지막에 열흘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갈 길이 급하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다시 마지막 정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시험을 3일 앞두고 몸이 이상했다. 몸살이 찾아올 때 그 느낌, 정말 싫은 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틀 후면 시험이라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속 공부했다. 그러다가 시험전날 몸살로 드러누웠다. 시험 보러 가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꾹 참고 시험을 보러갔다. 시험 보는 내내 너무나 아파서 제발 시험만 잘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결과는 저조한 점수가 나왔다.

무엇이 문제일까? 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내 앞길은 이리 험난할까? 그때 떠오르는 분이 바로 주님이었다. 내가 주님을 무시하고 공부에만 정신이 팔려 예배를 멀리하면서 내 힘만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모든 예배에 나가려고 애썼다. 이때부터 주님께 내 필요를 부르짖기보다는 그분이 내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08년 1차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지난해에 2차 시험도 같이 준비해온 터라 바로 2차 준비에 들어갔다. 기도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학교동생이 함께 중보 기도할 것을 제안해서 매일 같이 주위에 상처받은 성도들과 가족구원을 놓고 점심시간에 1시간 정도 같이 기도했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나를 보며 주님이 아파하시는 것이었다. 주고는 싶은데 지금 줄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엉겁결에 주님에게 매달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시험보기 2주전에 갑자기 몸이 아파오기 시작해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A형 급성간염이고 아주 위험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간신히 외출해 시험을 치렀지만 제대로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면 조금은 힘들어해야 정상인데 전혀 힘들지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비록 외적으로는 내게 어려움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를 위해 주님이 준비하신 선물처럼 느껴졌다.

퇴원했지만 몸이 힘들어 공부를 조금씩밖에 못했다. 하지만 예배에는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독서실 책상에 앉으면 말씀을 30분정도 묵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을 읽으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 마음이 복받쳐 오르고 눈에서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그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21장 15~17절의 말씀이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성격이 어떠한지, 베드로가 그 양을 먹인 경험이 있는지, 그 양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그 양을 먹이는데 어떠한 기술이 있는지를 물어보지 않으셨다. 아니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오직 하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이셨다.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주님에 대한 사랑”이었는데 나는 여태껏 다른 것을 찾고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성적이고 내성적이면서 주위사람을 많이 의식하며 산다.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일어나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은 나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난 금요예배만큼은 내 모든 것을 드리고 싶었고 꼭 주님을 만나고 싶어 나의 스타일을 버리고 목사님의 인도에 따랐다. 언제부터인가 금요예배의 시간 속에서 나는 주님과 가까워짐을 느꼈고 때로는 하나 됨을 느꼈다.

그러던 중 11월부터 다시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공부가 전혀 힘들지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마치 금요예배 때 주님께 드리는 예배와 흡사했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잡념이라도 생기면 목사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쳤다. 4월에 몸살에 걸려 며칠 누워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지막까지 평안함 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몸살이 걸렸을 때 싫어하는 헌법을 공부해야 돼서 걱정하는데 주님께서는 다른 마음을 주셨다. “네가 공부하지 못한 과목에서 나의 능력으로 더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주님의 마음을 느꼈다. 실제로 합격 후 점수를 확인하고 놀랐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과목임에도 상당히 높은 점수를 맞았고 바로 그 때문에 합격했다.

드디어 시험기간이 다가왔다. 좀 긴장도 되긴 했지만 마음만은 정말 평안했다. 새벽마다 목사님의 축도를 받고 시험장에 갔다. 첫째 날 시험이 끝나고 둘째 날 시험을 위해 상법을 A급 위주로 공부하고 있는데 내가 B급으로 표시를 해 놓은 어떤 부분을 지나갈 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냥 빨리 넘어가고 싶은데 내 마음 어디에선가 그것을 거부한다. 왠지 성령님의 역사라 느껴져 그 부분을 사례집까지 찾아보면서 아주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그 부분이 단독 20점짜리 문제로 나왔다. 흥분 속에서 그걸 쓰면서 얼마나 놀라왔고 감사했는지... 그리고 셋째 날 시험이 끝나고 여느 때처럼 수요예배를 드리고 독서실에서 마지막 민법을 공부하고 집에 가서 2차 게시판에 잠깐 들어갔는데 누군가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아서 그걸 보았는데 그것도 시험에 나왔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나누는 기쁨, 받는 기쁨, 제사장이 되는 기쁨

2003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신촌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분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기도해주고 찬양도 부르며 종종 말씀을 나누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냥 할머니가 좋아하셔서 의무감으로 갔지만 그렇게 2년 정도 다니다 보니 나의 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눔에 커다란 기쁨이 있고, 나의 삶이 더 윤택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봄 이었다. 아내와 할머니 집에서 같이 찬송을 하는데, 그 자리에 무형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바로 우리를 그 성전의 제사장으로 삼아주시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를 알게 해주시고 할머니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간증을 쓸 정도로 내가 잘난 거나 잘한 게 있는가? 그럼에도 내가 염치없이 주님께 나아와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분의 생명을 바치셨다는 그 진리뿐이다. 그냥 주님께 나아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할 뿐이다.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것은 10년 전, 5년 전, 3년 전을 비교해 보면 조금씩 주님께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하고 싶은 말은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그렇지만 주님 사랑합니다”이다. 실은 이 부분이 중보기도를 제외한 내 기도의 90%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영적 스승으로써 좋은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신 인치승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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