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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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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운교회 다니기 전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 생활을 시작하면서, jitto라는 연세대 법대 기독모임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용산에 삼일 교회에 출석하였으며, 매일 새벽 4시30경에 첫차로 용산까지 새벽예배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였고, 1차 시험에 2차례 합격하였으나, 컷트라인 보다 휠씬 상회하는 점수를 받고도 한 과목과락으로 2차에 떨어지는등 2차 시험에 거듭된 실패에 지친 마음으로 귀향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족 중 저만 교회에 출석하여서 영적으로 지치고 또 육적으로 질병이 생겨서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직 군대미필이기 때문에 군대가야할 상황이나, 질병으로 계속 재신체 검사상태여서 임의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30세의 나이에 경기도 연천의 공병부대로 배치 받아 군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군대가기 전에 부모님을 전도하여서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무부조리가 많은 부대여서 이등병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욕설을 듣고, 저보다 10살 정도의 아래 선임병에게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대 내에 교회가 없어서, 여단의 목사님과 가끔 통화를 취하면서, 부대 내에서 힘든 병사가 보이면 그 병사에게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때 여단목사님께서 그 병사에게 휴가를 주시거나. 가해병사에게 주의가 내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제대하였습니다.

 

2. 신림동 생활의 재시작

30대나이에 기업체 취직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 생기는 로스쿨을 갈까, 다시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이미 사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같이 공부한 시절에 합격했던 친구 선배들을 찾아가 제가 다시공부해도 합격할 수 있는지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저에 대해 너무 좋은 평가만을 하여 주어서, 저는 사법고시를 보기 위해 2008년에 아름다운교회에 출석하여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박3일간에 예비군 훈련동안 틈틈이 기독교라디오방송인 극동방송을 청취하면서 보냈는데, 성경에서의 40일이라는 주제로 한 목사님이 설교을 하시는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하나님과의 동행, 40일 동안의 비가내린 노아방주의 심판, 예수님의 40일의 금식기도, 예수께서 부활하신후 40일 동안의 생활등 저는 성경에서의 40일의 숫자에 매료되었습니다.

 

3 다시 세운 새벽무릎

(1)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새벽예배에 나가기는 하였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40일의 설교를 통해, 저는 다시 온전한 40일의 새벽제단을 쌓기로 하여, 혼자 달력에 표시해 나가면서, 저만의 특별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에 마음가짐이 흐트러진 경우(게임,불출석, 음란함 마음등)에는 다시 1일로 카운트를 시작해서, 40일을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5월에 시작하여 12월 중순에서야 온전한 40일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해서 남은 사시1차 기간 동안 공부에 집중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목사님께서 갑자기 이전 보다 긴 40일의 특별새벽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미진한 공부 때문에 고민이 되었으나 전출하기로 하고 계속 기도를 하여 1차 시험 전까지, 100일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예배가 끝나고 강대상 아래에서 30분~1시간정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변에 지인이 병상에 있을 때에는 병문하기 전에 1일 동안 금식한 후 다음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병문안을 하였고, 같은 셀원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에도 1일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부활절을 앞두고는 교회에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동행하기 위해 3일동안 금식을 해야겠다고 생각되어서, 새벽에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 후배들에게 3일 금식하면서 기도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부담스러워들 하여 혼자 기도문을 작성하여 3일 동안 금식하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국가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이시기에 저녁예배 안내봉사와 청소봉사도 병행하였습니다.

 

(2) 한계를 느끼다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부한다고 하였으나 교회에 모든 예배에 참석하면서, 방대한 분량의 사법고시를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겨울에 새벽예배를 전출하고 계속해서 모든 예배를 참석하는 것은 이미 공부만으로도 지친 체력을 더 바닥으로 가게하여 나중에 시험전날 금요예배의 경우에는 아예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도 금요예배때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쏟아내 찬양예배를 드리고 나면, 토요일은 몸이 아파 앓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교회를 마치고 잠을 제대로 시험전날 자지 못하고 시험장에 가면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항상 1교시 시험은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2,3교시 시험을 잘 보아도 1교시 시험에 터무니 없는 점수를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실패하는 저를 보면서, 주변에 믿지 않는 친구들이 말하기를 ‘형은 실력은 정말 좋으신대, 새벽예배를 안 나가고 시험보시면 안되요’ 하면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음성듣기를 좋아하신다는 생각에 끝까지 새벽예배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험전날 항상 금요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연이은 1차 시험의 실패를 통해 이젠 나이도 30중반이 되어서, 사법시험만을 고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국어, 영어, 한국사등 새로운 과목이지만 3개월 정도 공부해보니,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예상하지도 못하게 몸이 갑자기 너무나 아팠습니다. 혼자 신림동에 있기도 힘들어서, 결국 집에 내려가게 되어 시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도 다음해에 법률구조공단 시험에 응시하기로 하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이번에는 면접에서 탈락하였습니다. 영적생활에도 공부에도 한계가 느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4. 산속고시원 생활

속리산 자락에 한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근처에도 다행히 교회가 한군데 있어서 그 곳을 기도처로 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려오기 전에, 저는 제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 몇 가지 변하지 않는 기도제목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여,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듯이, 세계어린이후원단체인 compassion통한 아프리카의 한 아이의 후원과, world vision(6.25때 우리나라 전쟁 고아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통한 북한선교를 후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시생에게 월8만원의 돈은 작은 돈이 아니지만 다행히도 지금까지 5년 정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1년 남짓의 그곳 생활은 저에게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은헤의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잘 갖추어진 예배와 말씀, 믿음의 사람들만 모인 교제는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이 아니었구나’하는 반성의 시간이었으면, ‘타성에 젖은 예배와 기도였구나’ 하는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곳은 믿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예배가 없는 때에도 기도하러 가야했으면, 실제로 추운겨울에 이불에서 나가기 싫어질 때는 내가 후원하는 아이와 북한의 생명을 위해 기도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억지로 눈밭을 밟으면 교회에 나가 혼자 기도하였습니다. 그곳에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는데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예배당에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무릎에 아픔은 30분이상 주님과 교제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이 평안하였으면, 매일 예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 기뻤습니다.

 

5. 신림동으로의 복귀와 생활

그렇게 거기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다시 신림동으로 올라가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저는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실패했던 두려움과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있어, 다시 말씀을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장소을 옮겨 부모님이 출석하는 청주본가의 교회에 새벽에 출석하면서 기도하였으나. 성령님의 권면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합격에 대한 말씀과, 나머지 한 가지 말씀을 더하여 받고 다시 2013년 12월에 아름다운교회로 복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시험 한 달을 앞두고는 체력을 조절하여 새벽에 무리하게 나가기 보다는 교회앞에 1분이내 거리에 방을 잡고, 일어나자 마자 교회예배당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4년 1차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합격발표가 있는 날에 세월호가 침몰하여 아이들이 물에 잠기는 사건이 발생하여 그날 바로 수요예배에 나갔습니다. 강대상의 말씀을 통해 온 성도와 함께 기도하고 싶었으나. 수요예배도 새벽예배에도 기도하자는 말씀이 없어, 참 답답했습니다. 물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밥을 먹을 수가 없어, 하루 동안 금식하고 혼자 기도하기로 하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물속에서 배가 떠오르는 환상을 보여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이성적이고 바보 같은 기도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기도가 대부분 이런 기도였던 것을 보면, 저같이 바보 같은 사람하나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 법원행정고시의 합격

1차 시험에는 계속 합격하였으나 2차 시험에 3년 연속 불합격하였습니다. 매번 평균1점 이내에 점수 차로 계속 떨어지니 보니, 지치기도 하였으나 올해에도 명단을 확인한 후 저는 불합격 했으나 즉시 합격명단에 있는 후배들에게 바로 연락해서 축하의 말을 전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원망이나, 신앙에 대한 회의감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참 나를 많이 성장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감사했습니다.

 

(1) 법원행시 1차 합격과 2차 시험

올해 사시 2차를 치루고, 17년에 한번에 2차기회가 더 있으나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법원행시 시험을 보았습니다. 전날에 금요예배에 참석하였고, 유난히 무더운 여름날이 이어져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졸음이 와서, 시험장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였으나. 다행히 시험보기 직전에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고 나니 시험 보는 2시간동안 전혀 졸음이 오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치루어서 다행히 1차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행시는 2차 경쟁률도 10대1이 넘고 다수의 사법시험 2차 합격생들도 법행 2차 시험을 치루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새벽기도 때에 중보기도팀에 기도요청을 하였습니다.

 

(2) 2차 시험 합격과 면접시험

시험을 치루고 몇 가지 실수를 한 것이 생각나, 합격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형소법 최신판례 15점짜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고, 민법 때는 시간을 잘못알고, 30분이나 먼저 풀고 써버려서, 너무 간략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발표날에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는 순간 한동안 멍했습니다. 사법고시2차 시험에 7번이나 떨어진 제가 2차 시험에 명단에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장 면접시험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필기에서 실수를 많이 해서 성적이 최종합격까지 공개되지는 않지만, 좋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미 법률구조공단 시험에서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트라우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표 다음날 바로 새벽기도 시간에 중보기도팀에 기도 요청하였습니다. ①면접 예상 질문을 미리 잘 선정할 수 있도록, ②당일에 성령님께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입술을 예비해 주시길, ③저의 대답이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당일 10명중 2명이 떨어지는 면접시험장에서 저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미리 예상 질문 20문에서 30문제를 선정했는데, 예상 질문에서 80%이상이 출제되었고, 나머지 문제도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발표일에 조심스레 명단을 확인하였고, 마침내 최종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성적을 확인해 보니 제가 2차 10명의 합격자 중에 10등의 성적이었습니다. 저의 합격은 저보다 상위의 성적인 2명이 면접에서 불합격한 결과이었습니다. 정말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합격할 수 없는 제가 합격한 것이었습니다. 최종까지 270대1의 경쟁을 이겨낸 것은 저희 힘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7. 글을 마치며

저는 저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시험과정을 통해 작으나마 주님의 영광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기도해주신 아름다운교회 중보기도팀과 성도님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말씀으로 저희를 성령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인치승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10년 동안 새벽자리를 지켜 오시면서 기도해주신 저희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공부하고 계신 신림동 학우님들도 믿음 안에서 공부하신다면 반드시 합격의 영광을 얻으실 것을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혼자 즐겨 부르는 찬송을 적습니다(찬송가 217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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